이소룡과 누룽착(영화 정무문)의 제이는 쌍척을 샀다.
초보자는 손잡이가 스폰지로 덮여 있어 아프지 않다.
스펀진찰곤제이는 상급자용을 골랐어상급자용은 가격도 높았지만, 손잡이가 반짝반짝 은빛으로 빛났다.
스텐으로 되어 있어서 맞으면 너무 아프다.
그래도 제이는 마음을 꼿꼿이 세웠다.
반드시 이소룡처럼 되겠다는 굳은 의지와 함께, 마침내 상급자가 되겠다는 각오를 하고, 꽤 아픈 쌍절을 택했다.
쌍절곤은 쉽지 않았다.
팔에는 멍이 들고 상처가 생기기 시작하고
등과 허리, 뒤통수와 온몸이 뻐근할 정도로 아팠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형광등도 여러 번 깼고, 형광등 유리 파편이 떨어져 제이의 팔에 깊은 상처를 냈다.
제이는 날카로운 갈라진 틈에서 비어져 나오는 피를 보고 야릇한 쾌감을 느끼곤 했다.
그때마다 정무문 장면이 떠올랐다.
제이는 거의 이 용으로 변해갔다.
하면 할수록 통증은 더 심해졌지만 그럴수록 제이는 더 고집을 부렸다.
결단코 반드시…
제이가 그렇게 굳은 결심을 한 데는 큰 이유가 있었다.
제이는 단성사인가 피카딜리 극장인가에서 처음 이소룡을 봤다.
정무문!
정무문의 마지막 장면이 소룡의 눈과 묘한 신흠음, 갖가지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는
제이의 눈에 꽉 막혀버렸다.
상대 도장의 도발에 맞서는 모습, 쿠사리를 물리칠 때의 용감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다중인격적인 표정.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캐릭터
부르슬리는 브루스 리라고 해야 되나?헷갈릴 때도 있었지만 미국식 이름도 참 멋있었다.
부르슬리는 맨주먹으로 싸운다.
그러나 칼에 찔려 피가 나거나 상대가 무기를 들었을 때는 그제야 비장의 카드인 쌍절을 꺼낸다.
쌍절곤은 그래서 천군만마와 같은 존재다.
괴성과 함께 그는 덮친다
쌍절곤은 휘휘 날아다니듯 날렵하게 춤을 추며 적을 하나씩 쫓아간다.
그때의 그 통쾌함은 이 세상의 어떤 통쾌와도 바꿀 수 없다
이소룡이 적진에서 싸워가는 과정은 어드벤처 게임으로 난관을 하나씩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로 도약해 가는 순간을 연상케 한다.
이소룡은 언제나 정의의 맛 편이다.
한편으로, 약작을 돕는다.
언제나 절대강자야!
제이는 절대 지지 않는 이 샤오룽이 멋있었어그의 표정 하나하나에 빠뜨릴 수 없었다.
‘정무문’ 이후로는 ‘당산대형’ ‘맹룡과강’ ‘용쟁호투’가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제이는 차례로 섭렵해 나갔다
거기에 나온 이소룡의 동작 하나하나를 따라해 보았다.
몸통 옆에 세로로 길게 이어지는 검은 줄이 새겨진 노란 운동복도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운동복이 나와 사 입었다.
쌍절곤은 당연히 필수품이었다
이소룡은 이듬해 죽고 말았다.
처음엔 거짓말 뉴스인 줄 알았어.정말 영화처럼 그는 금방 사라져 버렸다.
그 충격과 외로움과 미련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소룡의 아쉬움 때문에 제이는 잠시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사망놀이>는 나중에 나왔는데 보지 않았다.
이소룡의 가짜 영화가 잇따랐다.
신정무문, 속정무문… 견자단, 성룡, 이연걸 등이 뒤를 이었지만 이소룡만큼 흥미롭지는 않았다.
제이에게는 이소룡뿐이었다.
이소룡만이 제이에게 딱 맞는 스타일이었다.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를 연상시키는 ‘정무문’의 엔딩 스톱 장면
바다에서 회를 먹어본 사람은 결코 뭍에서 회를 먹지 않는다.
’
제이의 생각은 아주 이랬다.
이소룡의 맛을 아는 사람으로서 이소룡 이외의 것은 그저 평범할 뿐이다.
식욕이 나지 않았다.
제이는 힘이 빠졌지만 매일 수선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쌍절곤은 휘둘렀다.
거울을 보면서 하기도 하고 창문을 열어 놓고 웃통을 벗고 땀이 날 때까지 쌍절을 흔들기도 했다.
하지만 원하는 왕자는 새겨져 있지 않다.
근육질로 바뀌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팔에 알통조차 생기지 않았다.
제이는 매우 낙담하고 있었다.
얼마나 아픔을 참았던지…..
그렇게 계속된 쌍절곤과의 전쟁은 한동안 계속되었지만 좀처럼 진전을 보지 못했다.
물론 남들보다 다소 하는 정도였지만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반드시 이소룡처럼 돼야 했다.
그러나 이소룡을 닮고자 하는 괴성이 조금 비슷했을 뿐 어떤 몸도, 어떤 동작도 전혀 이소룡답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아닌가!
’
제이는 비로소 이 작은 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식으로는 절대 이소룡이 될 수 없다!
제이는 한숨을 깊이 내쉬고는 쌍절곤을 포기해 버렸다.
그다음에 쌍절곤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동네 아는 동생에게 준 것인지, 부정을 저지른 친구에게 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단성사 지금도 단성사와 피카딜리극장 주변이 떠오른다.
단성사는 이내 큰길로 들어섰다.
피카딜리극장 ‘피카딜리극장’은 골목으로 살짝 들어간 곳에 있어서 영화를 보고 나오면 좁은 골목을 벗어나 큰길이 나온다.
제이는 그 골목길을 아주 좋아했다.
영화의 멋진 장면이 재생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짤그랑짤그랑 영사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모든 장면이 순간적으로 피드백되었다.
그렇게 다시 반추한 영상은 전혀 잊혀지지 않았다.
정무문의 한 장면은 그곳 골목을 지나면서 절대 잊을 수 없는 기록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