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왕 계보순
제1대 동명성왕 B.C.37 – B.C.19 고구려 시조 제2대 유리왕 B.C.19 – A.D.181대 동명성왕의 장남. 유리왕 22년, 수도를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옮긴다.
제3대 대무신왕=18-442대 유리왕의 셋째 아들. 『광개토대왕릉비문』에 ‘국가의 기틀을 다진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제4대 민중왕(민중왕) 44-483대 대무신왕의 동생(삼국사기 기록) 5대 모본왕 48-533대 대무신왕의 맏아들. 성악 포악 신하 두로 토막나는 제6대 태조왕 53-1462대 유리왕의 손자. 옥저 정복·중앙 집권 체제를 정비해, 고대 국가를 완성했다(왕위 세습 확립).7대 차대왕 146-1656대 태조왕의 동생.왕의 횡포가 극심하여 백성들의 원성을 들었다.
차세대왕 20년에 명림전부에게 죽임을 당하다.
8대 신대왕 1651796대 태조왕의 막내 동생. 77세로 즉위하다.
제9대 고국천왕 1791978대 신대왕의 둘째 아들. 왕위의 부자상속 확립 을파소 등용 진대법을 실시하여 빈민 구제책을 강구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한다.
10대 산상왕=197-2279대 고국천왕의 동생. 환도성으로 도성을 옮긴 제11대 동천왕, 227-24810대 산상왕의 아들. 위와의 전쟁으로 환도성이 함락되었으나 위기를 극복.제12대 중천왕 248-27011대 동천왕의 장남 제13대 서천왕 270-29212대 중천왕의 차남. 286년 반란을 꾀하던 동생 일우와 소발을 처단한다.
제14대 봉상왕, 제292-30013대 서천왕의 아들. 동생 돌고(미천왕의 아버지) 죽이기. 흉년이 들어도 화려한 궁실을 지으려고 한다.
결국, 국상창조리에 의해 폐위.제15대 미천왕 300-33113대 서천왕의 손자. 봉상왕을 피해 숨어 소금장수를 하다가 국상창조리에 의해 왕으로 옹립. 낙랑군 멸망 대동강 유역을 확보함제16대 고국원왕 33137115대 미천왕의 아들. 백제 근초고왕군과 평양성에서 싸우다 전사.17대 소수림왕, 371-38416대 고국원왕의 장남. 율령 반포, 불교 수용, 태학 설립 등으로 국가 체제를 정비한다.
삼국 가운데 최초로 중앙집권체계를 갖추었다.
18대 고국양왕=384-39117대 소수림왕의 동생. 재위 기간은 광개토대왕릉비에 근거한다.
19대 광개토대왕, 39141218대 고국 양왕의 아들. 백제의 공격으로 한강 이북 지역을 차지하고 신라를 침입한 왜를 격퇴(신라에 대한 영향력 강화). 재위 기간은 광개토대왕릉비에 기반한다.
20대 장수왕 412-49119대 광개토대왕의 장남. 평양으로 천도해 남진정책을 적극 추진한다.
남한강 유역까지 진출해 충주고구려비를 세운다.
재위 기간은 광개토대왕릉비에 근거한다.
21대 문자왕 492-51920대 장수왕의 손자.22대 안왕 519-53121대 문자왕의 장남 23대 안원왕 531-54522대 안왕의 동생.왕의 후사를 둘러싼 귀족 세력의 무력 충돌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제24대 양원왕 545-55923대 안원왕의 장남. 신라·백제에 한강 유역을 잃다.
제25대 평원왕 55959024대 양원왕의 장남. 586년 평양 대성산성에서 장안성으로 궁궐을 옮긴다.
26대 영양왕 590-61825대 평원왕의 장남. 을지문덕에 의해 살수로 수군을 섬멸한다.
27대 영양왕, 618-64226대 영양왕의 이복동생. 천리장성을 쌓기 시작해 연개소문에게 감독을 맡긴다.
연개소문에 의해 참사 28대 보장왕 642-668 고구려의 마지막 왕. 연개소문의 추대로 왕위에 오르다.
나당연합군의 침공으로 평양성이 함락되고 결국 고구려는 멸망.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고구려왕 족보 – B.C.37~A.D.668 (역대왕 족보)
고구려는 BC 37년 동명성왕 때부터 AD 667년 제28대 보장왕을 마지막으로 멸망할 때까지 약 700년간 한반도 북부와 중국 동북지방을 기반으로 발전하였다.
비옥한 농지보다는 산악 지형이 많아 영토 확장에 주력했고 활쏘기와 말타기 등 무예를 숭상하는 전통에 따라 정복 국가체제로 쉽게 전환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고구려는 한군현을 차지하고 요동지방에 진출하는 등 활발한 정복활동을 전개함과 동시에 수, 당의 침략에 맞서 동북아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하였다.
2대 유리왕은 수도를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옮기고 주변의 작은 나라를 통합하여 5부족을 중심으로 한 연맹왕국을 이루었다.
대무신왕 시기에는 호동왕자가 낙랑의 일부 지역을 정복하고 미천왕 때에 이르러 낙랑군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고조선의 옛 영토를 회복했다.
제6대 태조왕 때에는 옥저를 정복하여 만주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였고, 고국천왕에 이르러 부자상속제로 왕위계승이 굳어졌다.
17대 소수림왕은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대내적으로 왕권강화에 주력하였다.
그는 불교를 받아들여 백성들을 통합하고 태학과 경당을 두어 교육에 힘썼다.
또한 율령을 반포하고 국가의 기본 법체제를 정비하는 등 통치질서 확립에도 힘썼다.
제19대 광개토왕은 고구려 영토를 가장 넓게 개척한 왕이다.
남쪽은 백제와 싸워 한강 이북까지 진출하여 요동지방을 완전히 차지하였고,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아우르는 거대한 영토를 차지하였던 것이다.
그 뒤를 이은 장수왕은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기고, 적극적으로 남하정책을 추진하여 백제와 신라를 압박하여 고구려 최전성기를 구축하였다.
이후 고구려는 중국을 지배한 수와 당의 계속된 침략과 귀족 간의 내분으로 나라의 힘이 약화되었다.
668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평양성이 함락되면서 고구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한반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나라, 중국의 침입에 맞서 한반도의 방파제 역할을 했던 나라, 대부분의 유적지가 북한과 중국에 있어 더욱 안타까운 한반도 고대국가인 고구려. 고구려 역대 왕조의 계보를 통해 그 역사를 추측해 보자.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역대 고구려왕 – BC37~AD668,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고구려 왕조의 계보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