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사자(使者)(막 1:2)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앞서 보내노니 그가 너희의 길을 예비할 것이요” (마가복음 1:2)

마가복음이 논문이었다면 거절당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말라기를 잘못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마가가 선지자 이사야의 글로 인용한 본문의 2절은 말라기 3장 1절입니다.

이사야의 글이 3절에 나옵니다.

마가가 실수를 했는지 아니면 알고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두 명의 원저자를 구분하고 공로를 인정하는 것이 번거롭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가 인용한 말에 대해 알아봅시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성경에 무의식적이든 고의적이든 작은 오류가 종종 나타나기 때문이며,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생략된 사본이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이러한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마가가 인용한 말라기 3:1은 하나님께서 “일꾼들”을 보내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는 뜻입니다.

조금 더 강하게 표현하면 하나님은 사람 없이는 일하실 수 없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세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일을 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의존하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뛰어난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독점하거나 대신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일꾼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구원 사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하나님이 세상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자, 즉 하나님의 일꾼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을 알면 일꾼의 정체성과 본성이 드러난다.

마가가 인용한 말라기서는 그 답을 아주 간단명료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의 직업 ‘길을 예비하다’보지마. 여기서 준비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준비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물론 그가 직접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는 것도 아니다.

작품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가능한 배타적인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전 세계에서 이런 전속 작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나 조직은 없습니다.

민들레 꽃을 피울 사람이 없듯이 하나님의 일을 대신할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 자신이 하십니다.


가끔 하나님의 일을 스스로 하는 것처럼 큰 사명감으로 불타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겠다는 야심찬 꿈이 있습니다.

“청춘이 되라, 야망을 가져라!
”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한다는 생각은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세례요한이 마가를 염두에 두었듯이 광야에서 가난하게 살며 회개의 설교를 하는 것은 격려해야 할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삶이 아무리 훌륭했다 하더라도 그런 삶 자체가 주님의 일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일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주님의 신발 끈도 묶지 못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주님의 구원의 역사 앞에서 전혀 속수무책임을 인정한다면 훨씬 더 바른 교회를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기 칭찬, 성취 또는 프로그램을 스스로 포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